파인다이닝이라는 유려한 오케스트라에서 마지막 여운을 만들어내는 파티시에. 솔밤의 김성은 파티시에가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셨나요?
정말 기억하기도 힘든 어린 시절부터 페이스트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다른 분들처럼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한 것은 아니에요. 요리와 관련한 직업을 갖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그냥 방학이 되면 취미 수준으로 클래스를 듣는 정도였죠.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대학을 진학하려고 할 때, 요리를 전공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크게 반대를 하셨어요. 하지만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었거든요. ‘공부하기 싫어서’라는 모습으로 부모님께 비춰질까봐 미대, 경영대 합격을 모두 하고 그 후에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제가 공부가 싫어 요리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이기에 내 꿈을 찾아 가는 과정이니 부디 응원해 달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부모님께서도 마음을 바꾸셨어요. 그렇게 미국 CIA에 진학했어요.
지금 솔밤까지 오게 되신 여정이 궁금합니다.
아직 저는 사회 초년생이에요.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것이 아니고, 처음 제대로 된 경력이 여기서 시작해요. 학생 시절, 인턴십 형태로 실제 레스토랑에서 업무를 배울 기회가 있어서, 서울의 미쉐린 2 스타 레스토랑에서 잠시 경험할 기회가 있던 정도에요. 그 때 파인다이닝의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갓 대학교를 졸업하고, 운이 좋게 셰프님과 인연이 닿았어요.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때라 한국에 귀국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대학 선배님이기도 한 엄태준 셰프님은 주방에서 굉장히 엄격하고 카리스마 있고 배울 점이 있다고 면접이라도 보라며 요리를 하는 지인이 추천을 해 주신 덕분에 솔밤이 오픈하던 때 합류하게 됐죠.
이미 있는 레스토랑이 아닌, 새로 오픈하는 곳에 오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아마 저희 팀원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에요. 현빈씨도 이야기했지만, 저희 면접에서는 셰프님이 저희를 설득하고 공감대를 만드는 역할을 해 주셨어요. 앞으로 솔밤이라는 곳이 어떤 레스토랑이 될 것인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는데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바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셰프님이 “’엄태준’의 솔밤이 아니라 ‘팀원 모두’의 솔밤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함께 일하며 그 말이 단순히 포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예를 들어 저희 메뉴판에는 모든 팀원들의 역할과 이름을 적어 두었거든요. 감독 누구, 조명 누구, 이런 식으로 영화 마지막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저희의 역할을 명시했죠. 사실 이렇게 하는 레스토랑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잖아요? 저처럼 아직 경력이 많지 않은 팀원들까지도 이렇게 모두 고객분들에게 소개되니, 제 행동과 팀에서의 의미에 좀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신중해졌어요. 팀원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황세희 셰프님을 도와드리며 일을 배우고 있어요. 코스의 중간에 나가는 빵은 제가 책임지고 굽고요. 그 외의 시간에는 과일을 손질하거나 다른 파트를 도와 드리기도 해요. 페이스트리는 참 매력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레스토랑에서의 끝부분을 장식하고 마무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죠. 보통 끝맺음을 잘 해야 좋은 인상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이것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니까요.
디저트 전문점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매주 뮤지컬을 보러 갈 정도로 공연을 좋아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하며 무대 위의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늘 감동을 줘요. 저는 다이닝도 그런 공연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인들이 모두 노력을 하며, 하나로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몇 가지 메뉴를 준비해 두고 사람들이 방문해서 골라 가는 페이스트리 샵과 달리, 파인다이닝만의 매력이 있어요. 이곳의 협업 체계가 더 복합적인데, 사람들과의 인터랙션이 잘 기획된 형태 속에서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너무 재미있고 좋더라고요. 누군가와 함께 더 큰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 제게 많은 동기를 줍니다.
한편으론 페이스트리 업무 외에도 가드망제가 어떻게 프렙을 하는지, 앙뜨르메에서는 어떤 콜을 받으면 어떤 타이밍에 요리를 준비하는지까지 보고 배우니 일에 대한 시각이나 관점이 더 넓어져요. 아무래도 밀가루와 버터 외의 식재료를 다양하게 만져볼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저희 메인 디저트에 파스닙이 들어가는데 국내에서 자주 쓰는 재료도 아니고, 세이보리 메뉴에 더 많이 쓰는데 이렇게 디저트로 만들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것도 즐거워요.
김성은 파티시에가 보는 솔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제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홀과 주방 할 것 없이 다같이 어울리는 분위기에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요. 제가 오픈부터 함께 한 멤버인데, 초기에는 다들 처음 합을 맞추다 보니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팀원이 모두 긍정적인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배려하며 호흡을 맞추다 보니, 어려움이 힘듦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오히려 제가 올해 초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서, 팀원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그 상황이 부담스럽고 죄송했던 마음만 있습니다.
지금까지 1년간 솔밤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사실 일하는 중, 소소하게 웃을 일들이 정말 많아요. 즐겁게 일을 하면서도 오픈 당시와 달라진 것은.. 1년 전의 제 모습이 정말 근시안적이었다는 거예요. 물론 내년에 보면 지금의 저도 너무 근시안적이겠죠? (웃음)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 세희 셰프님이나 엄셰프님의 디테일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신기해요. 조금씩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팀원들과의 소통도 훨씬 잘되고요. 홀의 눈빛, 아주 작은 수신호만 봐도 언제 요리를 내야 할 타이밍인지 알 수 있으니 팀워크도 많이 발전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가요?
솔밤에서 제 역할을 좀 더 늘려가고 싶어요. 세희 솁을 도와드리며 많이 배우고요. 좀 더 멀리 본다면 5년 후 저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희미한 목표가 있어요. 제 고향이 제주도인데요,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발길이 닿지 않은 제주도의 어느 한적한 곳에서 여유를 줄 수 있는 페이스트리 샵을 차리고 싶어요.
제 인생관은 ‘지금을 즐겁게 살자’는 거에요. 셰프님도 늘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팀원들은 매일 반복되는 서비스일 수 있지만 매일 이 자리를 채우는 분들은 이 시간을 기다리며 귀한 발걸음을 해 주시는 것이고, 어쩌면 다시는 없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고요. 그래서 하루하루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 하려고 해요.
후회 없이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싶어요. 안 하고 후회하기 보다는 후회 없이 열심히 하는 것을 선택하고, 후회 할 짓이라면 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면 의미있는 날들을 채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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