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솔밤이 발전해 온 것은 모든 팀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정진하며 작은 성취를 이루어 온 덕분입니다. 팀과 함께 단단히 성장해 온 김태균 앙트루메티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외향적인 성격이고, 말하는 것을 좋아해요.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교사가 꿈이라고 했어요.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것도 좋고, 아이들과 잘 지낼 자신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중간고사를 보고 그 꿈을 접었어요. 제가 정말 현실적인 편인데, 공부로 크게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죠. (웃음)
저는 늘 현장에 뛰어들어서 경제활동을 하며 돈을 벌고 싶었어요. 대학을 안 가고 바로 일을 하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도 부모님께서 대학을 가고, 더 넓은 세상을 봐야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셨어요.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리학교로 진학을 했죠. 중학교 때 요리학원에 다녔는데 그 때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계속 있었거든요.
대학에 진학하고,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감사하게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조리과에 진학을 했어요. 1학년 때는 산학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현장 실습 경험이 필수 과정이었는데,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실습을 하며 현장을 배웠죠. 처음으로 부처(butcher) 파트에서 육류도 접해 보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단체 연회 행사도 치루어 보고요.
그리고 입대를 해서 장교 식당에서 2년간 경험을 하고 복학을 했어요. 2학년 때에는 현장 실습이 필수가 아니었고, 동기들은 모두 실습을 안 나가는 분위기였지만 저는 학교의 도움으로 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켄싱턴호텔 평창에 들어갔어요. 서울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여기 또한 큰 호텔들이 있는 계열사다 보니 여의도 지점으로 발령을 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죠. 두 달 간 실습을 하며, 정식 입사 제안을 받고 조기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솔밤까지 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9년 10월, 코로나 직전 호텔에 취업을 하고 난 뒤 전국적으로 코로나 여파가 심해졌어요. 제가 근무하던 곳도 2주간 임시 휴업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퇴사를 하고, 가족이 있는 홍천으로 와서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동네 일식당에서도 일을 하고요.
저는 사실 고등학교때부터 틈이 날 때마다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고, 바쁘게 살아왔어요. 틈이 나는 것을 참지 못했다고 할까요.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있더라고요. 돈을 모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휴대전화 요금도 늘 제가 번 돈으로 내며,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고요. 택배 상하차, 군청에서 청년 아르바이트, 일식당, 고기구이집 아르바이트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그게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딘가 갇혀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 군대 선임이었던 형이 당시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임프레션에서 일을 했는데, 그 형과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는 파인다이닝이 뭔지, 그냥 비싼 요리는 다 비슷한 것인지, 아무 것도 몰랐지만요. 그 형이 ‘같이 일하던 수셰프가 새로운 본인 레스토랑을 여는데, 직원을 구하고 있으니 면접을 보라’고 해서 2021년 3월 엄태준 셰프님을 처음 만나게 돼요. 대기업이라면 그 회사가 무얼 하는 회사인지 인터넷에 검색이라도 해보고 면접을 준비할텐데, 이건 아직 생기지도 않은 레스토랑에 취업을 하는 셈이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양복을 입고, 면접 두시간 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떨리는 마음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 제 생각들을 셰프님에게 말씀드렸어요.
감사하게도 셰프님께서 앞으로의 솔밤의 비전에 대해 시간을 오래 들여 설명을 해 주셨어요. 레스토랑에서 쓸 그릇도 보여주시고, 상호명과 솔밤 로고의 도안도 보여주시고요. 그러면서 6개월 뒤 오픈하는 레스토랑의 팀원으로 저를 채용해 주셨죠.
오픈 멤버부터 미쉐린 1스타를 받기까지, 솔밤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진짜 파인다이닝 현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나 많이 느끼고 배웠어요. 어떻게 칼질을 해야 하는지, 아니 어쩌면 칼을 쥐는 법, 애초에 어떤 칼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까지 셰프님께 많이 배우며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식재료도 많았어요. 우니, 캐비아, 트러플 같은 것을 실제로 보고 다룬 적이 없었거든요. 홍천 일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지만 생선도 도미나 광어 같은 것들만 보다가 금태 같은 식재료를 보고, 그 가격에 대해 알게 되고, 이런 음식을 즐기는 문화와 어떤 요리가 만들어져 나가는지를 보며 시야가 정말 넓어졌어요. 수익을 내려면 더 저렴한 재료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타협 없이 고가의 최상급 식재료만을 고집하는 셰프님의 모습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단 한 번도 솔밤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기본이지만, 제가 몰랐던 것들을 습득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시즌별로 모든 메뉴가 바뀌는 것에 두려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기대감이 들어요. 저도, 팀도 모두 함께 성장한 시간인 것 같아요. 작년 10월 솔밤이 그랜드 오픈을 하고 홀에 딱 4명의 손님을 받을 때만 해도 손을 덜덜 떨면서 서비스를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매일 만석 레스토랑이 익숙해지니, 그 때가 또 추억이 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솔밤 공식 오픈 전, 셰프님이 팀원들의 부모님을 초청해서 식사를 하게 해주셨어요. 그 때 저희 엄마가 이런 레스토랑에 처음 와 보셨다고, 너무 좋다고 제게 잘 하라며 응원을 해 주셨을 때가 기억나요. 서울에 거처로 얻은 고시원에 돌아와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잘 안 우는 편인데도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주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고 싶어요. 바다에 파도가 치면 그로 인해 배가 앞으로 잘 가요. 그 배의 선원 한 명이 노를 덜 저어도 배는 움직이겠죠. 하지만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 팀의 막내로 출발했지만, 제 역량을 키워 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 가드망제들이 하나의 디쉬를 같이 협업해서 만드는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려면 일단 자기 역할을 잘 해야 하니까요.
작년 여름, 솔밤 오픈 전에 셰프님과 모든 팀원이 모여 했던 미래지향적인 미팅이 기억나요. 10년에 이르는 셰프님의 비전에 공감하며, 그런 큰 목표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설렜거든요.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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