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계절, 완전히 새롭게 바뀌는 솔밤의 메뉴는 어떤 프로세스로 구상되고 만들어져 고객의 테이블 위에 오를까요? 엄태준 셰프가 솔밤의 메뉴를 구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솔밤은 어떤 요리를 선보이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실 아직도 고민하고 있고요. 아직 스스로도 ‘완성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고민의 과정이 드러나며 변해 가는 요리가 아닐까 싶어요.
제 고향과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를 보이고, 계절을 존중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고… 이런 가치를 늘 생각해요. 그냥 단순히 좋아 보이는 단어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몇 달, 몇 년에 걸쳐 오랜 기간 고민하며 추려낸 것들이에요. 솔밤을 오픈하고 일하며 더 중요해지는 부분들이 있고요.
한식, 프렌치, 컨템퍼러리… 이렇게 레스토랑의 음식을 분류할 때 솔밤의 요리는 어디에 속하는지 저도 가끔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손님들은 ‘최근 가 본 한식 레스토랑 중 정말 좋았다’라고 말해 주시니 저희의 요리가 한식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또 다른 분들은 ‘컨템퍼러리 웨스턴 퀴진’이라는 식으로 표현해 주시기도 해요. 그만큼 식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포인트에 더 집중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제 자신, 엄태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미완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여러가지 경험이 저를 거치며 아웃풋이 달라지죠. 그래서 변화무쌍한 것 같습니다. 일식, 중식, 한식, 프렌치, 이탈리안 모두 결국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면 모두 통한다고 생각해요. 도를 깨치고 다다른 곳에서는 모두가 만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가장 기본적으로는 재료를 ‘통찰’하려고 해요. 고찰이 깊게 생각한다는 의미라면, 통찰은 꿰뚫어 보는 것이거든요. 그 식재료가 주는 핵심을 보면 어떤 조리 방법, 테크닉을 적용하든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죠.
매 계절, 모든 메뉴를 새로 바꾸는 셰프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늘 요리에 대해 생각해요. 일을 할 때, 농장에 갈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 운전할 때, 샤워를 할 때… 어디서든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르고는 해요. 그 때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를 무조건 기록해요. 휴대폰에 기록하거나 사진을 캡쳐해 두기도 하고, 노트에 메모를 해 두기도 하고… 아무튼 기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잘 생각이 나지 않거든요. 알코올처럼 금방 휘발되는 그런 기억들이 나중에 메뉴를 짜는 데 큰 영감의 원천이 돼요. 정제되지 않은 자료이지만 일단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리고 나서 계절 메뉴를 짠다고 하면, 제철 재료부터 시작해요. 일단 다음 계절에 나오는 재료를 브레인스토밍하며 쭉 나열해요. 새로운 작물이나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은지 여러 날에 걸쳐서 확인도 하고요. 그리고 우선 프로틴(단백질)을 배열해요. 아무래도 요리의 구성에 프로틴이 중심이 되니까요. 여기에 어울리는 채소를 다양하게 짝짓죠. 겹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같은 식재료가 두 코스에 걸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제겐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리고 프로틴과 채소 매치가 되면, 그동안 모아 두었던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저만의 색을 더하고 살을 붙여요. 그러면 70% 정도가 끝난 셈이에요.
식재료를 먼저 매치하고 조리법을 뒤에 덧붙이시는군요.
네. 예를 들어 랍스터와 컬리플라워, 병어와 애호박. 이런 식으로 연결을 하는 것이죠.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요. 그래서 메뉴를 조금씩 바꾸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요. 애호박 철이 끝나서 컬리플라워로 바꾸면 앞의 랍스터 메뉴와 채소가 겹치는 것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거든요.
조리법도 식재료와 똑같이 다양한 것들을 중복 없이 보여주려고 해요. 드라이에이징, 버터 포칭,편백찜, 숯불 구이, 콩피, 이렇게 조리법도 다채롭게 사용해요.
플레이팅을 하며 음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텍스쳐를 조합하는 부분도 중복이 없어야 해요. 특히 플레이팅을 할 때는 세라믹, 목기, 유리 그릇 등 기물의 소재에 대해서도 비율을 정해 두고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어요. 고객분들이 접시를 하나하나 따져 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주 다양한 아트워크를 접할 수 있도록 제가 먼저 구상을 해서 선보이는 셈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도자기만 쓰거나, 유리 그릇을 절반 넘게 쓰거나, 이런 경우는 절대로 없어요. 하다못해 도자기도 유약이 강한 것, 단순한 것, 이런 배열을 생각해요.
식재료를 정하고,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조리법을 정교하게 하고, 텍스쳐와 프레젠테이션을 고민하고, 담는 기물을 비율과 흐름에 맞게 정하는 것. 그것이 솔밤에서 코스를 짜는 과정이에요.
요즘 메뉴를 구상하실 때 더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한식’이요. 솔밤에서 전통적인 한식 요리를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서울에서 좋은 요리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더욱 많이 들어요. 왜냐면 저는 식재료가 요리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땅에서 나는 재료로 가장 좋은 맛을 내며 발전해 온 것이 바로 한식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거든요. 여러가지 식재료 간의 조합도 이미 증명이 된 조합이고요.
예를 들어 지금 여름 메뉴인 병어와 애호박이 해당되는데요. 애호박을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생선을 찌거나 조릴 때 호박을 넣는 것은 지극히 한식적인 표현이에요. 겉으로 저희의 메뉴가 전형적인 한식의 모습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재료를 통찰하는 방법은 한식의 오랜 역사에 기반을 하고 있는 셈이죠. 굳이 말하지 않으면 ‘한식’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의 요리, 그런 섬세하고 은유적인 방식의 표현이 지금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에요.
깊이 들어가고, 더 좋은 요리를 이 땅의 식재료로 표현하려고 할수록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의 것들에 대해 더 갈증을 많이 느껴요. 솔직히 제가 싱가포르나 샌프란시스코에 솔밤을 오픈했다면 한식에 대해 지금 느끼는 만큼의 중요성은 공감하지 못했을 거에요. 만약 애호박이 없어서 주키니를 사용하면 맛도 달라지고, 새우젓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 지역에는 그곳의 기후, 식재료와 전통이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한국인이자, 이곳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뼈대와 정체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한식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에요. 더 많이 배우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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