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한 한국의 음식 문화와 지역 요리들이 늘 설렘을 준다고 말하는 김시현 가드망제. 솔밤의 첫 코스를 좋아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처음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아주 어렸을 때에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예중, 예고를 위한 입시 미술을 준비했는데 그 어린 마음에도 미술이 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중간에 똑 같은 무언가를 보고, 정답이 있는 것처럼 그려내는 것들이 제게는 와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이 가게 된 것 같아요. 막연히 ‘푸드 스타일링’에 호기심을 느끼고 중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조리 자격증을 준비해 조리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학교에서 요리를 배우다 보니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길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고등학교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시야가 넓어지셨군요.
막연히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삶을 동경하며 조리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한식과 양식, 중식, 일식과 제과 제빵까지 다양한 분야를 배우며 제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한식이었어요. 늘 경험하며 아는 분야라는 자신감도 생겼다가, 배우면 배울수록 더 새롭고 끝없는 느낌에 빠져들었죠. 3년간 다른 고민 없이 한식에 집중해서 제 전문성을 키우려고 했어요. 고등학교 재학 중 다양한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는데, 어떤 특정한 나라의 요리를 해야 되는 자리가 아니어도 저는 늘 한식을 기반으로 한 요리를 만들고,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떤 경력을 쌓아 오셨나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큰 호텔에 입사했죠. 인터컨티넨달 호텔에서 1년간 첫 발을 뗐는데요, 이때는 ‘서비스’와 ‘접객’의 개념에 대해서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VIP 라운지의 조식 담당 파트에서 처음으로 진짜 손님을 맞이해 보았으니까요. 손님과 유대관계를 가질 수 있고,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이 일의 요소들에 대해 강의실 밖에서 좋은 경험을 하며 서비스정신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워낙 큰 조직이니, 이런 곳의 체계에 대해서도 궁금했는데 그런 부분도 조금은 해소되었고요.
그리고 짧게 반 년 정도 미쉐린 2스타인 권숙수에서 처음으로 파인다이닝을 경험했어요. 권숙수는 장을 직접 담그기로 유명한 곳이다보니 한식의 기본이 되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치와 장아찌처럼 원래 한식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부분들을 어떻게 주인공의 자리로 올릴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담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요. 솥밥과 반상처럼 한식의 기본을 이루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맡으며 현대적인 한식의 모습에 대한 부분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1스타 비채나와 3스타 가온을 경험했는데요, 2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발효’에 대해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어떤 균이 발효에 관여하고, 탄산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같은 것들에 대해 매일의 상황에 따라 섬세하게 방법을 바꾸어 가며 서비스를 해야 했거든요. 예를 들어 동치미는 기본적으로 늘 만들어 두는데, 매일 아침 서비스를 할 양만큼 탄산을 새롭게 일으킬 수 있도록 아침 일찍 준비를 해요. 원래 동치미에는 탄산감이 없는데, 여기에 배즙과 같은 것을 더해 균을 활성화시키며 당일에 쓸 만큼 탄산을 더하는 일이죠. 온도와 습도,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혹은 실패해도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는지와 같은 실질적인 배움을 얻었는데 이게 참 큰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솔밤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미국 뉴욕에서도 한번쯤 해외 경험을 쌓아 보고 싶었는데 비자 문제가 생겨서 한국에 남게 되었어요. 아쉽기는 했지만 일단 결정된 사실이니, 제가 모아 둔 열정과 에너지를 알맞은 곳에 쓰고 싶었지요. 그 동안 솔밤에서 잠시 스타지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엄태준 셰프님의 에너지에 감동을 받았어요. 지금까지도 안정되고 훌륭한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아 왔는데, 솔밤에 오니 또 독특하고 생동하는 활력이 느껴져서 저도 덩달아 기운이 나고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이곳의 요리가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한식의 느낌과 DNA를 가지고 있지만, 국적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풀어가는 섬세한 흐름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솔밤 팀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솔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가드망제로 차가운 음식을 다루며, 코스 앞쪽의 요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엄태준 셰프님은 초반의 요리야말로 ‘고객이 깨끗한 입으로 와서 처음 경험하는 솔밤의 요리’라고 말씀해 주셔서, 더 마음을 집중해 요리에 임하고 있어요.
김시현 가드망제가 경험한 솔밤의 문화는…
업계 동료들 사이에서도 솔밤 팀의 단합력과 에너지가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늘 궁금했어요. 이곳에 합류해 그 비결을 보니, 아마도 셰프님이 처음 팀원을 채용할 때부터 마음이 잘 맞고 비슷한 결의 팀원들을 잘 모아 주신 덕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식에는 누구보다 예민하지만 따뜻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참 큰 복이에요. 그리고 요리사라는 주방의 직업이 일과 삶의 균형이 안 좋기로 악명이 높은 직종임에도, 솔밤의 직원들은 개인의 삶도 행복하게 꾸려 가면서도 좋은 결과물을 내고 있으니까요. 저도 그 중의 한 명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한식은 익숙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흥미로워요. 지역색이 강한 요리부터 고조리서, 현대 음식까지 배울 것이 너무 많죠. 예전에 평창에 박광희 명인께 김장을 도와드리러 간 적이 있는데, 고춧가루나 소금과 같은 기본 재료들도 얼마나 품질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 느꼈어요. 눈으로만 봐도 다르고, 향도, 요리를 할 때의 느낌도 모든 것이 다르더라고요. 레시피가 같아 보이더라도 재료라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적도 있고요.
통영에서도 지역음식을 연구하는 이상희 선생님께 통영 요리를 배운 적이 있는데요. 일주일 정도 통영에 머무르며 선생님을 따라 새벽 시장에 가서 재료 고르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식재료를 손질하거나 절이고 요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짧은 시간이라 방대한 통영 요리의 너무나 일부를 경험했을 뿐이지만, 그만큼 무궁무진한 한식의 세계에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지금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과 요리, 두 가지요. 지금은 솔밤 팀원으로써 이곳의 요리를 잘 배우고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이 언제나 가장 큰 자산이 되더라고요. 요리사 뿐 아니라 도예가, 디자이너, 바텐더와 어떤 업계의 분들이든 많이 알고 있을 때 서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먼 미래에 꿈꾸는 모습은…
저 또한 오너셰프가 되고 싶어요. 제가 한국의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대를 잇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은데요. 사실 각각 다른 지역의 것들을 서울이라는 한 곳에 모아 그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셰프가 되고, 그런 레스토랑과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요리와 디저트까지, 한국 문화가 가진 것들을 많이 배우고 제 것으로 만들어 좋은 요리를 하는 셰프가 되고 싶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