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를 졸업하고 호텔의 광동식 레스토랑에서부터 오픈 직후 2스타를 받은 컨템퍼러리 레스토랑의 수셰프로 일하기까지, 엄태준 셰프는 자신만의 색과 문법을 창조해 왔습니다. 그의 첫 오너셰프 레스토랑인 솔밤에서 엄태준 셰프는 유년시절 고요한 사색을 선물했던 안동의 솔밤교 근처 숲을 떠올리며 조용한 가운데 에너지가 느껴지는 정중동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솔밤에서 선보이는 퀴진이 궁금합니다.
제 자신, 엄태준이라는 사람 자체가 미완의 존재라고 생각해요. 여러가지 경험이 저를 거치며 아웃풋이 달라지죠. 그래서 변화무쌍한 것 같습니다. 일식, 중식, 한식, 프렌치, 이탈리안 모두 결국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면 모두 통한다고 생각해요. 도를 깨치고 다다른 곳에서는 모두가 만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가장 기본적으로는 재료를 ‘통찰’하려고 해요. 고찰이 깊게 생각한다는 의미라면, 통찰은 꿰뚫어 보는 것이거든요. 그 식재료가 주는 핵심을 보면 어떤 조리 방법, 테크닉을 적용하든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죠.
솔밤의 공간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요?
레스토랑의 이름과 같이, 안동의 소나무 숲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안동에는 문중을 중심으로 잘 보존된 소나무 숲이 곳곳에 있어요. 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이 절개를 상징해서 널리 사랑받아 왔죠. 어린 시절 안동에 살며 조용한 소나무 숲, 솔밤을 걸어다닐 일이 많았어요. 그 당시 저는 버스가 하루에 4번밖에 안 다니던 외진 곳에 살았어요. 버스를 기다리느니 걸어 가는 것이 나은 선택인 경우가 많았죠. 조용한 소나무 숲을 거쳐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걷다 보면 자연이 주는 힘에 자연스레 경외감이 생기더라고요.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이 점차 가라앉고 오롯이 집중되는 느낌이 좋았어요. 뭐가 되었든, 제 자신을 키운 경험이에요. 거창하게 말하면 사색이라고 할까요.
솔밤을 준비하며 도심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게 곧 레스토랑의 모티프가 되었고요. 자연은 무섭고, 존경스럽고, 동시에 아름답잖아요? 다가가고 공부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고 더 깊이 알려주는 게 자연이에요. 그래서 그 자연의 힘이 묵직하고 편안하게 표현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 모티프가 구현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갤러리를 정말 좋아해요. 오랜 시간 다양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제가 진심으로 즐기고 매혹되는 것 속에 답이 있더라고요. 미술관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 안에 설치된 가변적인 작품들이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며 늘 새롭게 변화하되, 사람들이 조용히 집중하며 움직이고, 자신만의 감성을 느끼는 공간이 주는 매력이 제가 원하던 것이었죠. 그 전체적인 느낌이 정말 좋더라고요. 제가 작품 하나하나를 완벽히 좋아하지 않아도, 미술관의 공기와 분위기, 사람들의 모습이 주는 감성이 해답으로 다가왔어요.
‘미술관’을 어떻게 공간에 녹여 내셨나요?
조용하지만 침묵하지 않고, 그 가운데 움직임과 감정이 가득한 곳이 미술관이라고 생각해요. 집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있고요. 그래서 최대한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는 깔끔하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미술관처럼, 저희도 식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화이트 톤의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저희는 미술품이 주인공이 아니라 음식이 포인트가 되죠. 여기에서 전체적인 솔밤의 이미지가 시작되었어요. 미술관의 매력은 트렌디(trendy) 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타임리스(timeless)’ 라고 보는데요, 심플하게 정제한 세련미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공간을 채우는 스탭과 음식의 변화무쌍함이 자연스레 포용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 솔밤은 도시의 소음으로 가득한 대로와 인접한 건물에 위치했지만 이곳에 들어오면 그 모든 배경을 잊은 듯 조용하면서도 집중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희 음식에 오롯이 집중하고, 사람들의 에너지가 느껴질 수 있다면 저희 의도가 잘 전달된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솔밤은 어떤 모습일까요?
솔밤은 제가 처음에 마음에 품은 모습에 정확히,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최종적인 결과가 어떤 고정된 형태는 아니에요. ‘솔밤’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에 가깝죠. 자기 스스로 발전하고 진화해 나가는 생명체처럼요. 제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제 아이에게 어떤 습관을 가지게 도와줄지, 또 어떤 인성을 갖추게 할 지 제가 교육을 하겠지만 이 아이가 성장해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는 제가 알 수 없잖아요? 솔밤도 방향을 다듬어 가겠지만 그 최종의 모습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오래 요리를 하겠지만,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난다면 솔밤을 이끄는 다른 셰프의 색이 더 들어가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 창의성이 다 드러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이렇게 제가 생각하지 못한 그런 곳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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